증언 다시 생각하기

PART 4 요한의 증언

3. 기억의 은혜 (5:1-11:54)

  A. 안식일 (5:1-5:47)
  B. 유월절 (6:1-6:71)
  C. 초막절 (7:1-10:21)
  D. 수전절 (10:22-11:44)
  소결론 : 종교지도자들의 살해 음모 (11:45-54)
이제 예수님은 여전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오래 전 그들을 위해, 그리고 온 인류를 위한 예표로 재정하셨던 기념일들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 본래 의미를 깨닫게 하십니다.

A. 안식일 (5:1-47)

  · 표적3 : 38년된 병자 치유
  · 설교 : 나와 하나님은 하나다
먼저 안식일에 대해서 설명하시고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던 어떤 명절날의 예루살렘 성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십니다. 그 병자가 있던 곳은 성전에서 제사에 쓰일 양들이 성안으로 들어오는 문(양문) 옆에 위치한 연못으로, ‘은혜의 집’을 의미하는 베데스다 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미신이 있어서 그 병자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 오고가는 문 옆은 명절을 즐기는 이들은 관심도 갖지 않던 사회 최하층인들이 먼저 물에 들어가려고 경쟁하는 무자비한 곳이었습니다. 참된 안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고통의 장소였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38년된 병자에게 낫고 싶은지를 묻자 몸이 불편한데 도와주는 이가 없어 물에 먼저 못갔다고 하소연합니다. 은혜를 베풀어 줄 이가 한 명도 없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무라지 않으시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으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게 됩니다. 한편 유대인들은 그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다니는 것을 지적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성전에서 그를 다시 만나 더 심한게 생기지 않도록 죄를 다시 짓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은혜를 받아 낫기 전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받은 후에 그 은혜를 저버리면, 그 죄가 더 커서 더 큰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안식일에 그 병자를 고친 이가 예수님이심을 알게 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하게 되자,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일하심으로 자신도 일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과 하나님이 동등함을 선포하십니다. 즉 택함을 받은 목적도 모른채 여전히 악을 행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아직까지는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면서 은혜를 베풀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도 병든 이스라엘을 향해 은혜를 베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참 안식의 은혜를 베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채 안식일을 사람을 옳아매는 도구로써 왜곡하는 유대인들의 위선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그들을 향해 심판주로서의 자신의 권한과 정체를 밝히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곧 은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드러내신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생명과 심판에 대한 모든 권한을 부여 받았기에 자신의 말을 듣고 자신을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부활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라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이 정말 그런 권한을 부여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시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주십니다. 먼저, 사람의 증언이 굳이 필요 없음에도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위해 세례 요한을 앞서 보내 증언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하시는 모든 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친히 증언하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에 기록하여 주신 그 하나님의 말씀이 전부 예수님 자신에 대해 증언하고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그렇게까지 증언하심에도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고 사람의 영광만을 위해 그 증언들을 왜곡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모세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정작 그를 통해 기록된 말씀은 믿지도 않기 때문에 모세를 통해 기록된 그 말씀이 실제로 가리키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지적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 세상 만물에게 안식의 은혜를 베풀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시고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에게 안식의 모범이 되어주길 바라셨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그 바람과 은혜를 왜곡했습니다. 하나님께 수많은 양은 잡아 바쳤으나 정작 은혜가 있어야 할 곳에는 은혜가 없었고 무자비와 인간의 영광만 남았던 것입니다. 38년의 광야 훈련 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그들은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무참히 짓밟힌 그곳에, 그분의 아들 예수님은 심판자로서 자신을 드러내셨고, 영원한 안식의 은혜를 누리는 길은 자신 뿐임을 분명하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B. 유월절 (6:1-7:1)

  · 표적4 : 오병이어, 표적5 : 물위를 걸으심
  · 설교 : 선포1 – “나는 생명의 빵이다”
이후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돌아와 사역하시던 중,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듭니다. 이에 위기를 감지하신 예수님은 디베랴 바다 건너편, 곧 헤롯 빌립이 다스리는 지역으로 이동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는 표적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오는 가운데 유월절이 가까워 집니다. 예수님께서 그 지역 출신인 빌립을 향해 따라온 수천 명의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을지를 물으시자, 빌립은 현실적으로 계산해서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때 그 지역 출신인 안드레도 나타나 한 소년의 도시락인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보이지만 이것들로는 역부족이라 설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음식이 대해 감사 기도를 하신 후 이만 명 가까이 되는 무리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열 두 바구니를 남기십니다. 이 표적을 본 무리들이 예수님을 참 선지자라 치켜 세우며 왕으로 삼고자 하자, 예수님은 혼자 떠나십니다. 이후 제자들은 먼저 배를 타고 사역본부인 가버나움으로 돌아가는데 저녁이 되어 풍랑을 만납니다. 그때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오시자 제자들은 두려워하지만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자 제자들은 기뻐하며 영접합니다.

한편 예수님과 제자들이 없어졌음을 알게 된 무리들이 가버나움에 와서 예수님 앞에 나오자 예수님은 그들의 신앙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십니다. 자신을 위한 만나를 위해서만 일할 뿐, 정작 만나를 주셨던 분이 누구이며 그분의 은혜와 그분께서 주신 사명을 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생명의 빵임을 선포하십니다. 유월절임에도 예루살렘에 가시지 않으시고 이방 문명과 뒤섞여 이방땅이라 불리는 갈릴리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홍해를 가르신 분이 바로 물 위를 걷는 자신이며, 광야에 도착하여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던 분이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자신이라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 중 한 사람이라도 잃지 않는 것으로,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은 것, 곧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놀라운 표적들을 보았음에도 그들이 여전히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자 예수님은 과거에 만나를 먹은 이들도 결국 다 죽었으나 자신의 살과 피를 먹는 자는 영생할 것이라 다시 선포하십니다. 이집트 탈출 당시 어린 양의 피를 바르면 살았던 것 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고 피를 쏟으시며 세상의 죄를 담당하신 그 크신 은혜를 알고 그 길을 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없어질 자신의 육체를 따라 살지 말고 큰 은혜를 베푸신 그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라고 촉구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으로 인해 오히려 많은 이들이 떠납니다. 급기야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 중 하나도 마귀라고 말씀하십니다.

C. 초막절 (7:2-10:21)

  · 형제들과 유대인들의 불신 : 생수의 강 설교
  · 설교 : 선포2 – “나는 세상의 빛이다”
  · 표적6 : 날 때부터 맹인인 자를 고치심
  · 설교 : 선포3 – “나는 양의 문이다”, 선포4 – “나는 선한 목자다”
유대인들 사이에 커져가는 적대감으로 인해 유대에서 사역하기가 어려워지자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에서 사역하시게 됩니다. 그러던 중 초막절이 다가옵니다. 함께 있던 예수님의 친동생들 조차도 예수님의 표적들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누구인지 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형제들을 먼저 예루살렘으로 보낸 후 명절 중간에 은밀히 예루살렘에 들어가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비난하자, 예수님은 모세를 따른다고 하지만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을 지키지 않는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십니다. 율법에 써 있다고 안식일에 아무것도 못하게 하면서 율법에 써 있다고 할례는 시키는 등 율법의 본 의미도 파악하지 못하고 인간의 유익에 따라 행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온전하게 하시는 일을 보고 그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그들 안에 정의와 공의가 없기 때문이라며 경고하십니다. 급기야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선포하자 무리들이 수군거리게 되고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경비들을 보냅니다. 예수님은 조금 이따가 자신을 보내신 분께로 돌아갈 것이며 그때는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경고하시지만 유대인들은 끝내 깨닫지 못합니다.

시간이 흘러 초막절 일곱째 날, 곧 마지막 날이 됩니다. 초막절이 시작되면 명절 기간 동안 매일 예루살렘 성의 물 저장소인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떠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번제단에 부었습니다. 그 제단 옆에는 물이 없으면 말라 비틀어지는 버드나무 가지를 매일 새 것으로 가져 놓은 후 호산나 기도문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 주위를 한 바퀴씩 돌면서 다음 농사를 위한 비를 기원했습니다. 번제단은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제사장의 뜰이라는 곳에 있었으나 초막절 기간 만큼은 명절을 맞아 사방에서 모인 순례객들이 대제사장을 따라 입장하여 모든 순서를 함께 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광야 이스라엘에게 물은 곧 생명이었기 때문에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저장하는 초막절 기간에 비를 기원하는 것은 생명과 직결된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마지막 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곱 바퀴를 돌면서 다같이 호산나 기도문을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셨던 그 날도 여느 초막절과 다름없이 수많은 순례객들이 비를 내려달라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목청이 터처라 호산나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며 서서 자신이 바로 생수의 근원이라고 크게 외치십니다. 목마른 자들은 모두 자신에게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간절히 구하는 그 생명의 물이 곧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무리들 사이에서는 논쟁이 일어나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보냈던 경비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에 놀라 빈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무리들을 저주하자 전에 예수님께 밤에 찾아와 대화했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옹호하는 발언을 함으로 그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대중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이 논쟁에 논쟁을 거듭했으나 결국 밤이 되어 그들은 자기 처소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십니다. 그리스도가 눈 앞에 계셔도 결국 그들은 다시 초막절 행사장으로 돌아갔고 예수님은 오히려 그 자리를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한편 호산나 시끌벅적 외치며 번제단을 순례하는 순서가 마치고 저녁이 되어 8일째가 되면, 여인의 뜰이라는 장소로 이동합니다. 여인의 뜰 네 모퉁이에 있는 촛대에 불을 환하게 밝힌 후 밤새 흥겹게 춤을 추며 축제의 마지막 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새벽 닭이 울 때가 되면 나이가 많은 랍비들에 의해 어른들부터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을 선창하고 이어서 모든 참여자들이 함께 찬양을 함으로 모든 행사가 마무리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아침에 예수님께서 돌아오셔서 가르치시기 시작하시자, 종교지도자들은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잡아 예수님 앞으로 데려옵니다. 용서해야 한다고 하면 율법을 어겼다고 하고, 용서하면 안된다 라고 하면 무자비한 사람으로 몰아 고발하려고 계획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시고 땅에 무언가를 쓰시는데 종교지도자들은 계속해서 따집니다. 이때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십니다. 새벽부터 어른들의 선창에 따라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을 힘차게 외쳤던 그들은 이 충격적인 말씀에 어른들부터 젊은이까지 하나둘씩 자리를 뜨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며 여인을 돌려 보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선포하십니다. 여인의 뜰 네 모퉁이의 불이 어두운 저녁부터 아침까지 환하게 밝히고 있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하는 증언은 거짓이라면서 예수님을 무시하자, 예수님은 율법에 두 명의 증언은 참되다고 쓰여 있듯이 자신과 하나님이 모두 자신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다고 변론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자신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고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이심을 모르는 자들은 죄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으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후에야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말씀하신 대로 행하신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이들이 믿게 되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자신의 말을 온전히 신뢰하고 따르면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달아 자유하게 된다고 선포하십니다. 이에 그들이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반박하자, 예수님은 그들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며, 오히려 살인자요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따라 가는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저주하십니다. 따라서 진리를 말해도 믿지 않는 것이며 귀신들렸다고 자신을 무시하는 것임을 지적하십니다. 자신의 말을 지키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선포하시자 이미 죽은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보다 당신이 크냐며 비방하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영광을 주시는 것이며 아브라함도 그것을 보고 기뻐했다 하시면서 자신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음을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돌을 들어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 나가십니다.

이후 길을 가시던 예수님은 나면서 맹인 된 사람을 보시며 하나님의 일을 위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드신 후 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그는 실로암에서 씻고 앞을 보게 됩니다. 당시 맹인을 비롯한 병자들은 부정하다는 비유로 성전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기에 그들은 큰 박탈감 속에 명절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온 예루살렘 성이 실로암에서 물을 떠서 번제단에 붓기도 하고, 밤새 불빛을 켜놓고 춤추며 기뻐하는 행사를 하면서 시끌벅적 보냈던 그 축제를 보지도 못하고 참여할 수도 없었던 맹인을 실로암, 그 감격스러운 축제가 있었던 곳에 보내 고치심으로써 빛을 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한편 그날은 안식일이었는데, 바리새인들은 그를 불러 날때부터 맹인이였는가를 확인 한 후 그를 고친 예수는 죄인이라며 어떻게 고침을 받았는지를 추궁합니다. 비록 앞을 보지 못했으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왔던 그는 바리새인들이 이러한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음을 의아해 하면서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음을 밝힙니다. 바리새인들에 의해 쫓겨난 그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자신이 누구임을 밝히시고 바리새인들야말로 맹인이며 죄인들이라고 지적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자신을 양들이 드나드는 문으로, 그리고 선한 목자로 선포하십니다. 자신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으며 자신은 봉급을 위해 양을 돌보는 목자가 아니라 양을 위해 스스로 목숨도 버리는 선한 목자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십자가 희생을 통한 영원한 생명을 선포하시자 듣는 이들 사이에 다시 논쟁이 일어납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수십년 동안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살면서 먹이시고 입히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이며, 한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면서 겨울을 준비하고 곡식을 저장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날에, 영적으로 광야같은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생수가 바로 자신임을, 눈이 어두워 갈길을 찾지 못하는 양같은 이스라엘에게 빛을 비추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줄 선한 목자가 바로 자신임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자신이 곧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이심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D. 수전절 (10:22-11:44)

  · 설교 : 나와 하나님은 하나다
  · 표적7 :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 선포5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두달 후 12월 겨울과 함께 수전절 명절날이 됩니다. 이날은 약 200년 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의 극심한 탄압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여 승리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200년이 지난 예수님 당시의 상황은 차가운 겨울과 같이 모든 면에서 타락과 부패로 얼룩진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독립운동과 관련된 장소인 성전 안 솔로몬 행각을 다니실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애워싸고 그리스도가 맞는지 밝히 드러내라고 협박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믿는 자는 자신의 양이며 못 믿는 자는 자신의 양이 아니라 말씀하시면서 자신과 하나님이 하나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에 충격받은 유대인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신성모독이라며 돌로 치려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구약에서 당시 재판장들을 신이라 하셨던 시편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셔서 세상에 보낸 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신성모독이라 할수 없으며 아무리 해도 자신을 못 믿겠으면 자신이 하는 일이라도 보고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후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세례 요한이 세례 주던 곳으로 가서 여전히 자신과 세례 요한 사이에서 헷갈려하는 이들을 돌이키십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과 가깝게 지내던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의 여동생들이 예수님을 찾는다는 소식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 완전히 죽을때까지 이틀을 더 기다리셨다가 나사로의 집으로 출발하십니다. 제자들은 나사로가 사는 곳이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리지만, 예수님은 빛이신 자신과 함께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십니다. 한편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며 마중 나온 마르다가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을 믿는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자신이 곧 부활이고 생명이며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선포하십니다. 이후 동생 마리아가 와서 슬퍼하자 예수님은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이후 예수님은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나사로를 살리시고 무덤에서 걸어나오게 하십니다.

소결론 : 종교지도자들의 살해 음모 (11:45-54)

  · 이방 땅 에브라임으로 피신하심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보고 많은 이들이 믿게 된 가운데, 이 소식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회의를 열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합니다. 그때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모두를 위해 유익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통해 십자가 사건을 미리 알려주신 것이었습니다. 이후 그들이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계획하자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이방인 지역인 에브라임에서 거하시게 됩니다.

예수님은 먼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안식일에, 그리고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명절이었던 유월절과 초막절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이룬 승리를 기념하고자 자신들이 재정한 수전절에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지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안식일을 통해 창조의 완성을, 유월절을 통해 생명의 구원을, 초막절을 통해 진리의 충만을, 수전절을 통해 부활의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창조주를 아는 자들은 그 은혜에 감격하여 그분이 주시는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목청껏 외치시면서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절할 뿐만 아니라 죽이려 했고, 결국 예수님은 이방 땅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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