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다시 생각하기

PART 2 마가의 증언

3. 길가로 이끄는 망치 (8:22-10:52)

  A. 벳새다 맹인 : 눈을 다시 뜨다
  B. 예수님의 가르침 : 첫째가 되려면 끝이 되어 섬겨라
  C. 여리고 맹인 :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가다 
이제 예수님은 벳새다에서 맹인을 치유하시며 예루살렘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시는데, 예루살렘 도착 바로 직전에는 여리고에서 맹인을 치유하십니다. 이 두 사건 가운데에 바로 세 차례에 걸친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는데, 벳새다 맹인과 여리고 맹인 이야기의 엄청난 차이는 이 두 이야기 가운데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큰 변화를 요구하는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A. 벳새다 맹인 (8:22-26) & C. 여리고 맹인 (10:46-52)

  A. 벳새다 맹인 
  · 마을 사람들이 데리고 옴
   · 마을 사람들은 못보게 됨
    · 안수하심 : 눈에 침을 뱉으시며 안수하심
     · 예수님의 물음 : 무엇이 보이느냐?
      · 눈을 다시 뜨다
     · 맹인의 대답 : 사람들, 나무 같은 것들이 걷는 것을 봄
    · 안수하심 : 눈에 다시 안수하심
   · 맹인은 모든 것을 보게됨
  · 마을 사람들을 피해 집으로 보내심
 
  C. 여리고 맹인 
  · 길가에 앉아 있는 맹인 바디매오
   ·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여기로 불러라! 그가 부르신다.
     ·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가다 
    · 무엇을 해줄까? 보기를 원합니다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바디매오
예수님께서 출발하시면서 치유하셨던 벳새다 맹인은 스스로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병고침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 인도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마을 밖으로 홀로 데리고 나가셔서 두 번에 걸쳐서 치료해 주신 후 집으로 보내시고 마을에 들어가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나 여리고 맹인은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스스로 예수님을 향해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외쳤고, 사람들이 꾸짖자 더 크게 외칩니다. 두 번에 걸친 외침 후에 예수님이 부르시자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갈만큼 간절함이 있었고, 그 간절함으로 예수님께 보기를 원한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맹인 자신의 믿음이 그를 구원했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보게 되어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을 스스로 찾지도 않고, 표적을 구하고, 만져주는 것과 같은 가시적인 행위를 구하는 그런 상태에 있는 자는 맹인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면, 이제부터는 능동적으로 예수님을 찾게 되고 표적이 아니라 긍휼과 말씀을 구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모두 뒤로한채 즉시 예수님을 따르며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과 부르심은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합니다. 두 맹인 치유 사건 사이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이 바로 이러한 요청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입니다.

B. 예수님의 가르침 (8:27-10:45)

  · 십자가와 부활 언급 1 : 베드로의 항변과 예수님의 가르침 1
   · 예수님의 변형 : 세례 요한의 성취와 예수님의 고난
    · 귀신을 쫓지 못하는 제자들 :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
     · 십자가와 부활 언급 2 : 제자들의 다툼과 예수님의 가르침 2
    · 귀신을 쫓는 어떤 자 : 예수님께 속한 자를 섬겨라
   · 예수님의 책망 : 완악함을 버리고 먼저 나를 따르라
  · 십자가와 부활 언급 3 : 제자들의 요청과 예수님의 가르침 3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두 번째 언급과 명령을 중심으로 여전히 믿음이 없어 귀신을 쫓지 못하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무명의 인물이 비교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세 명의 제자들에게만 광채와 함께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하시는 모습을 보이시며 자신의 신적인 모습을 드러내시는 사건과 여전히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 욕심과 물질에 매여있는 이들을 책망하시는 사건이 비교됩니다. 궁극적으로 처음과 끝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이어지는 자기 부인과 섬김에 대한 명령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 번에 걸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언급, 세 번에 걸친 제자들의 불신앙적인 행동들, 그리고 세 번에 걸친 예수님의 명령과 가르침, 이렇게 세 개씩을 묶어서 강조함으로써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더욱 강조함과 동시에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큰 믿음과 변화를 요구하는지가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마가를 통해 전하시는 세 가지, 곧 십자가와 부활, 제자들의 불신앙적 반응,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끝에서 섬기라는 가르침은 마가의 증언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정점이며, 제자들의 불신앙적 반응들은 인간의 실체입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섬겨야 구원하리라는 말씀은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실체를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감으로 죽이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함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는 명령인 것입니다.

· 십자가와 부활 언급1 (8:27-9:1) & 십자가와 부활 언급3 (10:32-45)

  · 십자가와 부활 언급 1 : 베드로의 항변과 예수님의 가르침 1
  · 십자가와 부활 언급 3 : 제자들의 요청과 예수님의 가르침 3
이 가르침은 그 시작부터 매우 급진적인 고백과 결단을 요청하시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벳새다 맹인을 치유하신 후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최북단인 가이사랴 빌립보로 가십니다. 그곳은 물의 근원지로서 매우 비옥했기 때문에 웅장하고 화려한 이방 신전들이 가득했으며, 특별히 거대한 바위를 깎아서 만든 크고 웅장한 신전들은 사람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누구라고 고백하는지를 물으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구원자로 고백합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처음으로 자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렇게는 안된다면서 도리어 예수님을 꾸짖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 말씀하시면서 사람의 생각만 할 뿐 하나님의 생각을 알지 못함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비로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라고 명령하시게 됩니다. 자기 생명을 구원하려 하면 잃고 반대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부끄러움 없이 생명을 잃으면 도리어 얻는다는 역설절이고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언급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사적으로 예수님께 찾아와 영광스러운 자리를 요구했고, 이를 들은 다른 제자들은 분노하게 됩니다. 이에 예수님은 세상 권력자들 같아서는 안된다고 경고하시면서, 큰 자가 되려면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면서까지 섬기기 위해 오신 것 처럼 너희도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 예수님의 변형 (9:2-13) & 예수님의 책망 (10:1-31)

  · 예수님의 변형 : 세례 요한의 성취와 예수님의 고난
  · 예수님의 책망 : 완악함을 버리고 먼저 나를 따르라
한편 첫 번째 언급과 명령을 내리신 이후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따로 산으로 데려가신 후 광채에 둘러싸여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이시는데, 그때 성부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임을 음성으로 말씀하시면서 그의 말에 순종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후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세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구원자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와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구약의 말씀이 세례 요한을 통해서 성취된 것이라 알려주시면서, 구원자가 받으실 고난과 멸시에 대한 구약의 예언도 바로 그 구원자인 자신을 통해 성취될 것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이 부분은 예수님께서 유대 지역과 요단 강 건너편 지역을 지나가실 때의 이야기와 대비됩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씀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지적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욕심과 강퍅한 마음으로 이혼을 합리화하려 했고,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온 자들을 꾸짖음으로써 자신들 안에 신앙의 순수함이 없음을 드러냈으며,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부하며 영생 얻는 법을 물었던 한 부자는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판 후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슬픔과 근심 가운데 떠남으로써 위선적인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고 맙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심히 어려움을 지적하시면서 사람 스스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하나님께서 변화시켜주셔야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물질 관계와 인간 관계마저 포기하는 자가 오히려 영생을 얻게 됨을 선포하십니다. 처음된 자가 마지막이 되고 마지막인 자가 처음이 되는 일, 곧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한 순종의 여부에 따라 인생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즉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순종과 희생, 그리고 말씀의 성취를 거울 삼아 세상 욕심을 모두 버리고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야 만이 영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 귀신을 쫓지 못하는 제자들(9:14-29) & 귀신을 쫓는 어떤 자(9:38-50)

  · 귀신을 쫓지 못하는 제자들 :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
  · 귀신을 쫓는 어떤 자 : 예수님께 속한 자를 섬겨라
예수님께서 세 제자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남아있던 제자들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 논쟁 중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 없는 세대를 꾸짖으시면서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올바른 기도와 금식을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는 올바른 신뢰의 관계가 있는 것이 올바른 믿음이며, 그럴 때 바로 이런 귀신을 쫓을 만한 능력이 일어날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한편 이름도 없고 예수님을 따르지도 않던 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을 목격한 제자 요한은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못하게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반대하는 자가 아니면 위하는 자라 하시면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면 아무리 작은 자라도 섬겨주고 실족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십니다. 신체의 한 부위가 그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할 것 같으면 없애버리고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은 서로 화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십자가와 부활 언급 2 (9:30-37)

  · 십자가와 부활 언급 2 : 제자들의 다툼과 예수님의 가르침 2
갈릴리를 지나가시던 중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십자가와 부활을 언급하시자,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두려워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를 지러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사역 본부인 가버나움에 가시는데 그 길에 제자들은 누가 더 큰지 논쟁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사람의 끝이 되어야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명령하십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마가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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