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의 은혜를 알고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말씀을 떠나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그의 아들을 보내셨고 그를 통해 진리를 깨닫기 원하셨습니다.
A. 예루살렘 (2:13-3:21)
· 유월절 전 : 타락을 지적하시는 예수님 VS 표적을 요구하는 유대인들
· 유월절 날 : 표적들을 행하시는 예수님 VS 믿는 척 하는 유대인들
· 유월절 후 : 유월절 어린양으로서의 예수님 VS 충격받는 니고데모
예수님은 먼저 예루살렘에서 진리를 전하십니다. 그때는 유월절 전이었는데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그 타락상을 보시고 진노하십니다. 제물과 환전 수수료를 이용해 엄청난 돈을 착취하는 장사터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질을 하시며 장사꾼들을 쫓아내시는 등 큰 소동을 일으키시자 유대인들은 표적을 보이라고 협박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허물면 삼일 만에 일으킬 것이라며 십자가와 부활을 암시하시지만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유월절 당일, 예수님께서 명절을 지키러 온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표적들을 행하시자 많은 이들이 믿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속마음을 다 아시기 때문에 그들과 거리를 두십니다.
그날 밤, 유대 최고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몰래 찾아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표적들을 인정한다며 말을 꺼내는데 예수님은 그 중심을 꿰뚫어 보시고 하늘로부터 나지 않으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곧 죄가 씻김을 받은 후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니고데모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은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홍해(물)을 건너게 하신 것도 은혜이며(유월절), 이후 시내산에서 강림하셔서(성령) 율법을 주신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일어난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입니다(오순절).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 받는다고 믿고 율법 준수에 평생 목숨을 걸었던 당시의 신앙관을 완전히 뒤엎는 가르침이었고, 이는 니고데모의 인생 전체를 바꿔야 하는 충격적인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방법을 묻자, 예수님은 모세 시대에 불순종한 이스라엘이 나무에 매달린 구리뱀을 보면 살았던 것처럼 자신이 나무에 달릴 것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믿는 자만이 용서받고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밝히십니다. 나아가 자신이 바로 빛이기에 진리를 행하는 자는 그 빛을 알아보지만 타락한 예루살렘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은 여전히 어둠을 더 사랑하기에 빛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임을 지적하십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유월절 행사를 막 마친 시점이었습니다. 어둠만 가득했던 이집트 노예 생활 가운데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심판을 피해 구원을 받게 하셨던 유월절 명절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또 바로 전날 그 명절 행사를 통해 그 의미를 다시 한번 기억한 상태에서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의 희생을 통한 구원의 가르침은 너무나 생생하고 충격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B. 유대 (3:22-36)
· 세례 요한의 증언 : 그리스도 예수님 VS 그의 길을 준비하는 자신
· 저자의 증언 :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 VS 불순종하면 진노
이후 예수님은 유대로 이동하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지역에 퍼지자 사람들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 중 누가 더 크며 누구를 따라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을 벌입니다. 이에 세례 요한은 다시 한 번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땅에서 난 자일뿐이라 분명히 밝힙니다. 하늘로부터 오셔서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그를 믿는 자에게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대중들에게 선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이 이러한 논쟁을 이용해 공격하려 하자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십니다.
C. 사마리아 (4:1-42)
· 여인과의 대화 :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VS 참된 예배를 깨닫는 여인
· 제자들과의 대화 : 전도하라는 예수님 VS 음식을 건네는 제자들
· 사마리아인들의 반응 : 전도하시는 예수님 VS 믿게 된 사마리아인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유대인으로서 당연히 사마리아 지역을 피해서 다른 길로 돌아가실 거라 생각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들과 피가 섞인 혼혈이라는 이유로 경멸했고 그 땅을 밟는 것 조차 꺼려하여 먼길로 우회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가야만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의도적으로 사마리아의 수가(세겜)라는 동네에 도착하십니다. 과거 아브라함과 야곱이 첫 제단을 쌓았던 곳,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와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며 복과 저주를 외쳤던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은 하실 사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에서부터 60km 이상 되는 거리를 걸어 저녁 6시가 되었기에 피곤하신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에 앉은채 한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대화가 이어지자 예수님은 자신에게 영원히 솟아나는 물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연스럽게 영적인 문제로 화제를 전환하십니다. 이어서 여인의 불편한 가정사를 언급하심으로써 근본적인 영적 갈증에 초점을 맞추자 여인은 예수님이 선지자임을 깨닫고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묻게 됩니다. 이에 예수님은 예배의 핵심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며 중요한 것은 성령님을 모시고 진리로 예배해야만 하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여인은 예언된 구원자가 오시면 다 알려줄 것이라 말하는데, 예수님은 바로 자신이 그 예언된 구원자임을 드러내십니다. 충격을 받은 여인은 자신이 하던 일을 뒤로하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옵니다.
한편 저녁이 되어 먹을 것을 사러갔던 제자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의 관심을 먹는 문제에서 영적인 문제로 전환시키십니다. 그때는 오순절 기간, 즉 밀 추수기로 온 들판이 밀밭으로 출렁이던 때였는데, 예수님은 이것을 영혼의 추수, 즉 전도로 연결하여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오순절은 곡식 추수에서 과일 추수로 넘어가는 전환의 때이고, 이집트 탈출 후 율법은 받은 날로서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며,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성령님이 강림하신 날로 영원한 천국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는 날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궁극적으로 가르치려고 하신 바는참된 예배는 전도하는 삶으로 전환된다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자는 성령님을 모시고 진리로 예배하게 되는데, 그는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복음을 전함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후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는 자가 가져야 할 근본적인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여기까지 온 것처럼, 구원은 누군가에 의해 뿌려진 씨앗이 또 누군가를 통해 열매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에 대해서 누구도 자랑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은 은혜의 결과이며, 따라서 전도는 그 은혜로 인해 행하게 되는 것이지 결코 구원의 조건이나 개인의 자랑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전도받은 자나 전도하는 자나 모두가 영원한 나라에서 함께 기뻐하게 될 것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한편 여인의 전도로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듣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께 이틀 더 함께 해 주시기를 요청했고, 그 기간 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전도를 통해 한 여인이 진리를 깨닫게 되고, 깨달은 그녀가 또한 전도하게 되어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을 제자들이 눈으로 보고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예배와 전도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D. 땅 끝 (4:43-45)
· 이방인들의 영접 : 피하시는 예수님 VS 표적을 구하는 이방인들
예수님이 이방 땅 갈릴리로 돌아오시자 명절 때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표적을 본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고향 갈릴에서 환영받을리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고, 그들의 환영은 오직 표적을 더 보려는 것일 뿐임을 간파하시고 그곳을 떠나십니다.
소결론 : 표적2 -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4:46-54)
· 이방인인 신하와 그 온 집안이 다 믿게됨
이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표적을 보이셨던 갈릴리 가나로 다시 가시는데, 마침 왕의 신하 한 사람이 자신의 아들을 고쳐달라며 찾아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 갈릴리 사람들은 표적을 추구하는 잘못된 신앙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러나 그 신하는 자신의 외아들이 죽어가는 다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죽기 전에 와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은 아들이 살아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냥 가라고 하십니다. 기적을 바라며 보기위해 모시러 왔으나, 오직 말씀만 믿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이때 왕의 신하는 말씀을 믿고 돌아갔고, 돌아가는 길에 아들의 회복 소식을 알리러 오던 종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들이 회복된 때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때인 것을 깨닫게 되면서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은 표적과 기적을 추구하는 왜곡된 신앙에서 말씀을 신뢰하는 올바른 신앙으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친히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니고데모에게 자신은 알고 본 것을 말하고 있으나 거부당하고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유대 사역을 하실 때에도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시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경멸하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구원자이심을 알아봅니다. 왕의 신하인 한 이방인도 말씀을 듣고 믿어 온 집안이 믿게 됩니다. 즉 택한 백성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복음을 전하심에도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사마리아인들과 이방인들이 오히려 말씀을 듣고 은혜를 깨달아 믿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