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다시 생각하기

PART 3 누가의 증언

3. 구원의 빛 (9:51-19:27)

  A. 제자 (09:51-10:24) : 제자들의 오해, 제자 훈련의 기쁨 
    B. 영생 (10:25-10:42) : 율법교사의 질문, 좋은편을 택한 마리아
     C. 기도 (11:01-11:13) : 기도 방법, 빵을 빌려주는 친구의 비유
      D. 분별 (11:14-11:36) : 표적 추구 경고, 네 속에 빛을 점검하라
       E. 믿음 (11:37-12:12) : 지도자들의 위선, 하나님 신뢰 성령의지
        F. 물질 (12:13-12:34) : 어리석은 부자 비유, 그의 나라를 구하라
        G. 관계 (12:35-13:09) : 충성스런 청지기, 용서와 회개의 열매
       H. 구원 (13:10-14:06) : 안식일, 비유, 좁은 문, 멸망, 안식일
        G’. 관계 (14:07-15:32) : 자기 부인, 잃은 것을 찾는 비유
        F’. 물질 (16:01-16:31) : 불의한 청지기 비유, 부자와 나사로
       E’. 믿음 (17:01-17:19) : 용서와 순종, 사마리아 나병환자의 믿음
      D’. 분별 (17:20-17:37) : 내적인 하나님 나라와 재림의 급박성
     C’. 기도 (18:01-18:14) : 과부와 재판장 비유,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
    B’. 영생 (18:15-18:30) : 어린이 같이 받는 자, 근심하며 돌아간 관리
  A’. 제자 (18:31-19:27) : 구원받은 맹인과 세리, 므나의 비유
갈릴리 사역을 마치신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시게 됩니다. 누가는 이 부분에서 다른 증언들에 없는 내용들을 종합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어떻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가시는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특별히 교차 대칭 구조를 이용해 앞 부분의 각 주제를 뒷 부분에서 다시 역으로 언급하면서 가르침을 더욱 명확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핵심에 있는 구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A. 제자 - 부르심 응답

  A. 제자 (09:51-10:24) : 제자들의 오해, 제자 훈련의 기쁨
  A’. 제자 (18:31-19:27) : 구원받은 맹인과 세리, 므나의 비유
먼저 구원의 여정은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제자들은 부르심에 대해서 오해하였습니다. 생명의 구원을 위해 부름 받았음에도 사마리아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주를 선포하는가 하면, 자신의 일을 먼저 끝내고 따르겠다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실습을 마치고 돌아온 70명의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아 쓰임받은 것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들이 자신들에게 항복한 것을 기뻐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오해를 지적하시면서 이러한 것들을 보고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루살렘 도착 직전까지도 끝내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말씀하셔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자들과 다르게 여리고의 맹인은 예수님을 알아보는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지배국가인 로마에 고용되어 세금을 거둠으로 민족의 미움을 받고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세리, 그 중에서도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공의와 빼앗은 것이 있다면 4배로 갚는 정의의 삶을 약속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가 구원 받았음을 선포하십니다. 제자들의 깨닫지 못함이 맹인과 세리의 구원과 비교되는 가운데, 예수님은 므나의 비유를 통해 주인의 왕 됨을 거부하고, 주인의 성품을 오해하는 이들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B. 영생 - 제자의 선택

  B. 영생 (10:25-10:42) : 율법교사의 질문, 좋은편을 택한 마리아
  B’. 영생 (18:15-18:30) : 어린이 같이 받는 자, 근심하며 돌아간 관리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이제 바라보아야 할 목표는 영생입니다. 예수님께 찾아와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물은 율법교사는 이웃의 범주를 스스로 정해놓고 이웃 사랑의 법을 합리화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강도 만난 자를 방관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을 지적하시고, 반대로 율법교사가 이웃이 아니라고 합리화하는 사마리아인의 자비로운 행동을 강조하심으로 참된 이웃 사랑이 하나님 사랑이며 영생의 길임을 가르치십니다. 이후 예수님께서 마르다라는 여인의 집에서 식사하시게 되는데,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가 손님 접대를 위해서 일을 돕지는 않고 예수님의 말씀만 듣는 것을 못마땅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를 옹호하시면서 중요한 것을 택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영생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이 곧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지 않으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경고하십니다. 즉 영생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으므로 다른 것에 대한 근심과 염려를 버리고 어린 아이처럼 단순하게 영생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다 지켰다고 자부하는 한 부자 관리가 와서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었을 때에도, 예수님은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구제하여 하늘의 상급을 쌓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시지만 그는 심히 근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함을 지적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영생을 얻게 됨을 말씀하십니다.

C. 기도 - 하나님 마음

  C. 기도 (11:01-11:13) : 기도 방법, 빵을 빌려주는 친구의 비유
  C’. 기도 (18:01-18:14) : 과부와 재판장 비유,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
이제 예수님은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택해야 할 것은 영생임을 알았다면 그 다음은 영생을 주시는 분의 마음을 아는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계명을 주신 분의 마음을 알아야 대화가 된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따라서 먼저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의 나라가 임하기를 먼저 구함으로 하나님 사랑을 표현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이어서 개인이 아닌 우리의 양식을 구하고, 우리가 서로 용서함을 보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구하며,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지키실 것을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즉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더 설명하시기 위해 빵을 빌려주는 친구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한밤 중에 급하게 손님을 맞은 친구가 빵을 요구했을 때 빵을 주는 이유는 친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문화 배경에서 손님 접대를 못하는 것이 마을의 수치였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음을 지적하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가장 좋을 것을 주실 수 밖에 없는 분임을 설명하십니다.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은 영생이며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기 때문에 성령님을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을 주심이 하나님께는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이후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를 통해 더욱 명확히 이점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의한 재판장이라도 억울한 과부의 끈질긴 호소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후 하물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억울한 자들의 부르짖음에 즉각 응답하시는 분이실 수밖에 없음을 비교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 하실 때가 되면 그런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따르는 자가 없을 것임을 또한 경고하십니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의롭게 여기고 남을 멸시하는 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과는 정반대로 자신의 의로움을 일방적으로 드러내는 기도였던 반면 세리는 하나님의 의로움 앞에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세리만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십니다.

D. 분별 - 마음 재설정

  D. 분별 (11:14-11:36) : 표적 추구 경고, 네 속에 빛을 점검하라
  D’. 분별 (17:20-17:37) : 내적인 하나님 나라와 재림의 급박성
이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진심으로 아는 자는 그의 마음 또한 바뀌게 됨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자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향해 귀신 들렸다고 조롱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자신을 통해 임했음을 선포하신 후 그들을 향해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는 악한 세대라 경고하시면서 요나의 표적, 즉 십자가와 부활 외에는 더 이상 보일 표적이 없다고 경고하십니다. 자신은 솔로몬이나 요나 보다도 더 큰 이, 곧 참된 빛이심을 선포하시면서 자신의 마음 안에 빛이 임했는지를 스스로 점검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후 예수님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의 때를 묻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눈은 마음에 있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소경됨을 지적하십니다. 이어서 자신이 받을 고난과 미래에 있을 갑작스런 재림과 심판에 대해 말씀하신 후 목숨을 위해 애쓰지 말 것을 경고하십니다. 독수리가 시체있는 곳에 모이는 것처럼, 자기 목숨을 위해 사는 자들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며 심판을 받아 그 시체를 독수리들이 먹게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십니다.

E. 믿음 - 행동 재설정

  E. 믿음 (11:37-12:12) : 지도자들의 위선, 하나님 신뢰 성령 의지
  E’. 믿음 (17:01-17:19) : 용서와 순종, 사마리아 나병환자의 믿음
예수님은 이제 마음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로 이어져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한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되어 식사하시던 중 그들의 위선을 향해 맹렬한 저주를 선포하십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자신의 종교적 열심과 사람들의 인정을 따라갈 뿐, 실상은 시체같이 죽은 자들로 공의와 하나님 사랑이 없음을 지적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가르쳐야 하면서도 오히려 선지자들을 죽이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만드는 율법교사들을 향해 저주를 선포하십니다. 이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러한 종교지도자들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을 말씀하신 후 누구든지 예수님 자신을 시인하는 자는 구원할 것이며 성령님께서 친히 인도하실 것이니 그분을 의지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이후 예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는 자의 삶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가르치십니다. 바로 용서와 순종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도 실족하지 않도록 할 것과 용서를 구하는 자는 반드시 용서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또한 종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순종을 보이라고 명령하시면서 그 예로 사마리아 나병환자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가 제사장에게 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다가 모두 고침을 받았으나,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와 발 아래 엎드려 감사한 것은 사마리아 사람 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명 뿐임을 안타까워하시면서,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음을 선포하십니다.

F. 물질 - 물질관 재설정

  F. 물질 (12:13-12:34) : 어리석은 부자 비유, 그의 나라를 구하라
  F’. 물질 (16:01-16:31) : 불의한 청지기 비유, 부자와 나사로
이제 예수님은 인간의 기본 생활과 관련된 물질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십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함을 지적하시면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 다음 날 그의 혼을 거두어 가시면 그의 모든 재물이 아무것도 아님을 가르치십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제자라면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다만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은 자녀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시기에 두려워하지 말고 소유를 팔아 구제함으로 하늘의 보물을 쌓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후 예수님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통해 올바른 물질관에 대해 더욱 강조하십니다. 불의한 행위로 실직하게 된 청지기가 불의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실직 후의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지혜롭게 보일 수 있지만 불의한 재물로 사귀는 친구는 오래가지 않음을 지적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대한 충성이 큰 충성이 되는 것이며 지극히 작은 불의가 큰 불의가 됨을 지적하시면서 하나님과 재물을 절대로 함께 섬길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한편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함으로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는 것을 아시고 율법의 핵심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간음을 행하고 있다며 신랄하게 경고하십니다. 그러면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결과는 돌이킬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이름을 알수 없는 한 부자는 죽어 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데, 결과를 돌이킬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할 뿐 나뉘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언급되지 않은 채 아직 죽지 않은 다섯 형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부자는 죽은 나사로가 부활해서 자기의 다섯 형제들에게 나타나면 그들이 회개하고 음부에 오지 않을 것이라 말하지만,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 곧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은 죽은 자가 살아나도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라 전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즉 기록된 말씀을 통해 물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는데,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자들은 무슨 경험이나 증언도 소용없다는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G. 관계 - 인생관 재설정

  G. 관계 (12:35-13:09) : 충성스런 청지기, 용서와 회개의 열매
  G’. 관계 (14:07-15:32) : 자기 부인, 잃은 것을 찾는 비유
마지막으로 제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임을 가르치십니다.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언제 오실지, 청지기들에게 무엇을 맡기셨는지, 그리고 그 주인이 어떤 분이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예수님의 재림은 갑작스럽기 때문에 제자라면 늘 재림을 준비해야 하며, 주인의 청지기로서 맡겨주신 양들을 잘 먹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인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신 오셨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청지기의 삶에는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올바른 관계가 있는 자만이 고발하는 자와 화해할 수 있고, 회개할 수 있으며,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이들의 특징을 언급하시면서 관계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십니다. 그들은 잔치 자리에서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될만한 가깝고 부유한 이웃들을 잔치에 초청함을 지적하시면서, 낮아지면 친히 높이시고 갚을 것이 없는 천한 이들을 초청하면 친히 갚아주실 것이라 말씀해 주십니다. 이어서 초대에 응했음에도 잔치 당일 날 자신의 유익을 쫓아 오지 않음으로 주인을 무시한 사람들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시면서, 자기의 목숨과 모든 재물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며 따르지 않는 자들은 제자가 될 수 없음을 가르치십니다. 세상 사람들도 건축을 하거나 전쟁을 할 때 비용이 충분한지, 승산이 있는지를 확인하는데, 하물며 하나님도 확인하셔서 합당하지 않은 자는 쓰실 이유가 없음을 강조하십니다. 한편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오는 가운데, 수군거리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최종 경고를 하십니다. 잃은 것을 찾은 주인의 기쁨을 무시하는 첫째 아들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라는 것입니다. 양 백마리 중에 잃어버린 한 양을 찾을 때도 매우 기쁩니다. 남편의 결혼 선물인 열 드라크마 중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을 때 더욱 기쁩니다. 두 아들 중 잃어버린 한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기쁨의 와중에, 첫째 아들은 아버지를 저주합니다. 그는 둘째가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했을 때,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하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 당시 상황을 알았음에도, 첫째로서 두 배의 몫을 받습니다.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아버지, 당시 문화로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자비와 긍휼의 그 아버지를 향해,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종 취급 당해왔고, 그럼에도 자신은 끝까지 순종했다며 자신의 의로움을 강조하며 아버지를 위선자로 정죄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모욕하고, 돌아온 동생까지 모욕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첫째 아들의 위선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뒤틀려 있었고, 동생과의 관계에서도 뒤틀려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 더 크게는 하나님의 장자인 이스라엘의 위선에 대한 최종 경고였습니다. 아버지 사랑과 동생 사랑이 없는 첫째 아들의 위선은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없는 종교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전체의 위선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참된 용서와 회개, 선한 열매를 보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더 이상 쓸 수도, 쓰실 이유가 없음을 분명하게 경고하십니다.

H. 구원 - 좁은 문

  H. 구원 (13:10-14:6) : 안식일, 비유, 좁은 문, 멸망, 안식일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구원의 길은 매우 좁은 문임을 강조하십니다. 제자로의 부르심에 응답한 자가 영생의 중요함을 깨닫고 영생을 주시는 분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이 완전히 변하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모든 물질 관계와 인간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이 바로 구원인데,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18년 동안 귀신들려 고생한 여인을 고치시자 회당장은 오히려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화를 냅니다. 또 다른 어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수종병 든 한 사람을 가리키시면서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을 향해 안식일에 병 치고는 것이 어떠한지를 물으시자, 그들은 아무말도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외식을 지적하시면서 고통에서 건지는 것이 안식일의 참된 의미이자 구원임을 가르치십니다. 안식일을 재정하신 목적은 약자 보호와 생명 존중에 있는 것인데, 이러한 창조주의 뜻은 모른채 오히려 생명을 옭아매는 도구로써 안식일을 남용하는 위선을 고발하신 것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 한 알과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누룩으로 소개하시면서, 그것이 처음에는 작은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즉 제자로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처음에는 보잘것 없는 작은 겨자씨 같이 보일수 있지만 그것이 구원이라는 큰 선물이 되는 것이고, 작은 누룩 같지만 밀가루 전체를 부풀게 하듯 인생 전체를 완전히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와 부르심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과, 선지자들을 죽이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곧 황폐해져서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버림받게 될 것이라 저주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누가의 증언의 핵심이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의 모든 가르침의 최종 결론으로서 구원의 문은 좁은 문임을 가르치십니다. 즉 영원한 안식으로 가는 길은 좁은 문으로서, 보기에는 겨자씨와 누룩같이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기에 알아보고 찾는 이들이 극히 적다는 것입니다. 알아보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들어가지 못할 자가 많으며 한 번 닫힌 후에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 앞에서 먹고 마셨고 자신의 가르침을 길에서 들었다 할지라도 행악하는 자들은 기억되지 못할 것이며 심판을 받을 것이라 경고하십니다. 믿음의 선조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신실한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가운데, 택함을 받았으나 악을 행하는 많은 이들은 쫓겨나 이를 갈것이라 경고하십니다.
누가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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